지난 글보기
하늘이 온통 먹구름으로 덮혀있네요. 한바탕 비가 쏟아질 듯할 기세입니다. 이런날은 집에서 누워서 동동주에 파전을 먹여야 될텐데, 주말은 멀고도 멀었네요.
이번 이야기는 지난 시간 절대권력편에 이어서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지난 시간 절대권력편에 이어서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지난밤 당직근무를 서고 황금같은 토요일을 근무취침으로 보내버린 가츠군. 저녁식사시간이 되자 분대 막내가 조심스레 다가와서 나를 깨운다.
'분대장님~♥ 분대장님~♥ ㅜㅜ (좀 부르면 쳐 일어나라!) 방긋방긋'
'음냐.. 으응 효리야!!'
'분대장님~~!! 저녁식사시간입니다. 식사하시겠습니까?'
'아씨! 왜깨워! 니가 효리냐! 아 왜깨워!!! 밥? 으음 반찬머야?'
'콩나물국, 쇠불고기, 콩나물무침 입니다.'
그놈의 콩나물! 그래도 콩나물 밥까지는 아니구나. 쇠불고기라... 나름 괜츈한데? 어기적어기적 거리며 일어난 가츠군은 관물대에 놓여진 군대리아와 우유를 발견했다.
'야 패티 2개 넣었어? 근데 치즈는 한장이야? 개념상실했구만?'
그렇게 침상에 걸터앉아서 우유랑 햄버거를 한입 베어먹으면서 SBS 인기가요를 보면서 식사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소대로 걸어들어오는 인사계원
'가츠상병님! 지금 뭐하십니까? 지금 여유롭게 TV보실때가 아닙니다. 분교대 시험이 이제 일주일도 안남았습니다! 저번기수에 우리 대대 성적이 안좋아서 교육장교 완전 빡돌았습니다. 이번에 파견가기전날 시험쳐서 떨어지면 그냥 대대에서 갈아마셔버린다고 난리도 아닙니다. 빨리 이거 보고 달달 외우십시오!'
라며 한뭉치의 프린트를 주었다. 순간 소대원들은 나를 바라보며 각양각색의 눈빛을 날렸다.
한달 고참들과 동기는 가츠 이색히 또 뺑끼부리네! 이번에 소총반아니고 기능반이라던데 아나 니가 거길 왜가! 라며 연신 부러움과 시기를 눈빛을 날렸고, 내 밑의 후임들. 특히 내 분대 후임들은 분명히 표정관리를 하고 있는거 같았지만 엄청 행복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거 같았다.
'와우 가츠 저색히가 분교대 간단말이야. 우하하하 잠시나마 안 볼 수 있구나! 으하하 제발 가서 1등해서 휴가까지 가버려라!, 이참에 가츠 복귀할때 휴가맞춰서 나가면 얼마나 안 볼 수있는거지! 아 절호의 기회인데 ㅜㅜ'
인사계원이 주고간 프린트를 보니 군대리아의 맛이 없어졌다. 얼핏봐도 수십페이지의 두툼한 프린트. 온갖 군사용어와 사회나가서 정말 한마디도 써먹을필요가 없어보이는 내용들로 가득차 있었다.
아나, 하필 전 기수놈들이 못해서 분위기 살벌할때 가는거지... 아아아아!!!
사실 우리 대대는 분교대성적에 매우 민감한 부대이다. 역대 1등 배출자도 가장 많았고, 항상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다. 특히 5중대 인원들이 항상 3위권에 포함되어 있었다. 예전부터 대대장, 중대장님들이 항상 보여주기를 너무 강조하여서 성적이 나쁘면 죽도록 갈구고 군장돌린 아픔의 역사이다.
이미 전날 소대장님 한테도 1등하고 오겠다고 큰소리 탕탕친 나로서는, 일주일동안 죽도록 공부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그날 저녁부터 프린트와 교본을 붙잡고 연등을 시작하였다.
간부연구실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간부님들이 짜증내면서 들어왔다.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다음주부터 타 연대가 연대훈련 뛰는데 월,화는 대항군으로 훈련나가야되고, 수요일부터는 그 연대에 가서 대신 경계근무를 서야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망의 2006년 대대ATT가 2주후로 잡혀져서 휴가,외박이 다 짤렸다는 내용이다.
순간의 나의 머릿속은 희망,설레임,행복으로 가득찼다. 잠만 생각해보자. 일단 다음주는 연등으로 훈련제끼고~ 파견갔다가, 포상받고 복귀하면 바로 휴가 떠나니깐 대대ATT까지 제낄 수 있겠는데.
참고로 그당시 06년 월드컵 기간이었다. 토고전을 치르고 프랑스전을 앞둔 시점이다. 바깥세상은 월드컵으로 축제 분위기일때 군대는 훈련으로 죽을 맛이었다.
가츠의 등뒤로는 월드컵기간에 무슨 훈련있나며 투덜거리는 간부들, 그 순간 가츠는 악랄하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기필코 포상을 받으리라!
그렇게 일주일간 미친듯이 연등을 했다. 아마 평생 살면서 그때가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거 같다. 수능 준비를 그렇게 했으면 난 분명히 지금 성공한 20대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어느정도로 했냐면 수요일까지는 주둔지에서 연등을 했는데 수요일부터는 타연대로 경계파견을 우리 중대원 전체가 가야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도 가야만 했다.
막상가니깐 또 말년인원들 때문에 근무팀이 나오지 않아서 나보고도 근무를 나가라는 것이다. 그것도 찍고빽으로 하루에 5타임. 대신 근무서면서 공부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낮에는 그냥 잘보이니깐 되는데 밤에는 책을 보고싶어도 볼 수 없잖아? 결국 LED를 사용해서 초소에서 공부를 했어. 당시 나의 후임근무자가 아들군번이었는데 나를 보면서 기가 차는 눈빛이었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연등을 마치고 무사히 대대 모의고사도 합격하고 분교대로 입소하였다.
우리 연대에 분교대가 있어서 우리 대대 인원들이 가장 먼저 도착하였다. 가서 보니깐 의무중대 아저씨, 본부중대 아저씨, 소총중대 계원아저씨들이 있었다. 후훗, 이 아저씨들은 연등 할 시간이 없어서 분명히 나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계원들은 책 하나도 못보고 왔다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대략 1시간후 27사단 도처에서 입소인원들이 도착했고, 그 수는 대략 130여명정도 되는듯 했다. 총과 군장을 맡기는 인도인접을 시작했다. 순간 여기저기서 조교들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않습니다아. 교관님 말씀에 집중합니다아.'
아나 이 얼마나 달콤한 멘트인가? 불과 1년 6개월전만해도 그 한마디에 벌벌 떨고 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불과 1시간전만해도 왕처럼 지내다가 왔는데, 이 무슨 봉변인가? 물론 앞에 있는 조교들은 분명 일,이등병일꺼다. 분명 명지령 빽치기가 먼지도 모를테고,도마치고개, 중봉, 매봉 데리고 올라가면 반도 못가서 낙오할거다.
하지만 앞으로 일주일동안은 밥 안되는 그들에게 복종 또 복종해야된다. 그들에게는 무시무시한 벌점의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조교만의 절대권한! 물론 상점도 줄 수 있다!
자기가 가져온 총기를 총기함에 넣고 있었다. 조교가 부르면 총번을 조교에게 알려주고 총기를 총기함에 거치하면 된다. 차례대로 총기를 거치하고 있었다.
'00교육생님 총기번호?'
'병장 000 K-2 총번 888-888 이상입니다!'
'네?'
'888-888 이상입니다아!'
헐 정말 군대에는 없는게 없다지만, 888-888 총번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저건 설마 실수로라도 총번 잘못 말하지는 않겠다 ㅋㅋ
잠시후 또 대박이 나왔다. 76사단에서 교육받으러 온 아저씨, 조교가 부르자 뭔가 묵직한 것을 낑낑거리며 들고나왔다. 아니 이건 후방부대에서나 볼 수 있다던 전설의 m60 이 아니신가? 자그마치 10kg가 넘는다는 전설의 무기
대개 파견자들은 자신의 무기가 k3, k-201일지라도 화력이 강한 중화기 무기이므로 유사시 꼭 필요하므로 대개 k-3의 경우는 부사수에게 인계하고 부사수 k-2를 가져오고 201의 경우는 유탄을 k-2인원에게 달아주고 k-2만 가지고 온다. 저 아저씨는 람보인가보다 당당하게 m60을 가지고 왔는데, 총기함에 들어가지 않는다 ㅋㅋㅋ 결국 행정반에 보관하였다.
10명씩 한개 분대로 배정되었는데 그날 오후 입소시험에서 3번 교육생이 떨어져서 조기복귀하는 바람에 11번까지 한개 분대로 편성되었다. 우리 분대원들의 소속을 살펴보자니 수색대 1명 의무대 2명, 포병연대 3명 헌병대 1명, 기억안남 2명을 포함해서 나까지 10명이었다. 편성표만 보면 지상연합군이었다.
첫날 시험치자마자 자대로 복귀한 인원이 꽤 되었다. 이거 살벌하다. 저녁시간 막사에서 취사장으로 우리 분대는 아주아주 큰걸음으로 아주아주 큰목소리로 군가를 하며 이동하였다. 마침 지나가는 우리 중대 연대탄약고 근무자들
'이기자! 가츠상병님 고생이 많습니다~~ ㅋㅋㅋ 지금 어디보십니까? 정면바라봅니다 ㅋㅋㅋ 조교아저씨 10번교육생 정면안보고 여기 째려봐요! ㅋㅋㅋ'
시작되었다. 내가 예전에 맨날 선임들 놀렸던 레파토리. 이넘들 토씨 하나 틀리지않고 따라한다. 창피하다. 부끄럽다. ㅜㅜ 그렇게 우리 분대는 옹기종기 모여서 식사를 하는데, 4번 포병아저씨가 대뜸 우리를 바라보면 하소연한다.
'사실, 저 말년휴가 3주 남았어요 ㅜㅜ 부대에서 보낼 인원없다고 저 보냈어요 우앙... 저 어떻하면 좋죠?'
앜ㅋㅋㅋㅋ 이 아저씨 대박이다. 난 그래도 상병말이잖아. 난 할 수 있어! 난 부끄럽지 않아! 4번아저씨에 비하면 난 행운아야~ 그렇게 스스로 세뇌하며 첫날밤을 보냈다.
얼마나 잤을까? 불침번이 날 깨운다. 아저씨 위병소 근무투입해야데요 지못미 안습 ㅋㅋㅋ
우와 미친거아냐... 지금 중대당직병한테 이 꼭두새벽에 위병소를 나가라고? 뭐... 나가야지. 그렇게 조교근무팀과 위병소 근무를 나갔다. 조교선임은 위병조장으로 건물안으로 들어가고 나랑 이등병처럼 보이는 조교랑 위병소 앞에 서있었다. 참 한숨만 나온다.
그 찰나, 또 우리 대대쪽에서 연대탄약고 근무자들이 오고있다. 조교아저씨가 수화를 하고는 통과하는 순간. 우리 소대 애들이 아닌가! ㅋㅋㅋ 그들은 꿈에도 내가 근무서고 있는줄 모르고 있다. 아니 상상조차 못하겠지.
내 옆을 지나가는 순간, 이놈들 껌을 씹고 있었다. 옳거니! 안그래도 우울한데 잘걸렸다!
'야 김00이 이 XXXX! 미친거아냐! 누가 근무 쳐나갈때 껌씹고 나가래!, 수화는 XX 완전 개가라로 쳐하고 앉아있고 미쳤군 미쳤네! 요즘 빵실하지?'
그녀석들 마치 저승사자를 본듯한 표정으로 나를 봐라보았다. 정말 오랫만에 보는 X됐다! 표정이다. 그렇게 녀석들에게 분풀이를 하고 하늘을 보니 별이 참 맑고 이뻤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부터 본격적으로 교육에 들어갔다. 사실 일반반으로 오면 야외에서 하는 교육이 많은데 기능반은 거의 내무실에서 교육하고, 마지막날에 한번 나가서 각개전투만 하면 된다. 정말 기능반 오길 잘했다! 무더운 여름 누가 밖에서 구르고 싶겠는가?
독도법, 화생방, 구급법등 교육을 하는데, 사실 지난 주말만 해도 교육인원들은 뭐 볼꺼 있다고 열심히하노! 그냥 대충 개기다가 복귀하면되지. 다들 어쩔수 없이 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수업전 교관님이 각종 포상내역을 말해줬고, 특히 이번에 포상나가면 사제에서! 사회에서! 월드컵 스위스전을 볼 수 있을것이다! 그것도 빛나는 태극기 누나들이랑 말이다!
그 순간 내무실 공기가 바뀌는 것을 느꼈다. 그 후 120여명의 교육대상자들은 너도나도 발표를 자처했고, 특히 독도법 수업시간에는 뒤에 위치한 아저씨들이 중앙통로를 이용해서 바로 앞까지 와서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하였다.
그놈의 포상이 무엇인지. 사람을 이지경으로 만들다니 ㅜㅜ 다시한번 휴가증을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사실 뭐 내무실에 앉아서 수업받는 거는 힘들지 않다. 그치만 종일 누워있지도 못하고,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PX도 못가고 결정적으로 TV도 못본다. 내 기억으로는 화요일인가 프랑스전이 새벽에 있었다. 당시 토고전은 연대 병력이 모두 모여서 대형스크린으로 응원했고, 프랑스전은 새벽시간이라서 중대별로 조기취침을 하고 조기기상해서 내무실에 본다고 하였다.
하지만 분교대 내무실에는 TV가 없다! 우리 교육생들은 마치 쿠테타를 일으킬 분위기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법, 당시 교관님중 한분의 휴대폰이 위성DMB가 나오는 신형 휴대폰이었다. 그 휴대폰을 교육용 영사기에 연결해서 그렇게 새벽에 10초에 한번씩 끊기고, 흐리멍텅한 화질의 프랑스전을 분교대에서 보았다 ㅜㅜ
그래도 난 행복했다. 4번 아저씨는 그 시간에 위병소 근무를 나갔으니 말이다 ㅋㅋㅋ 살다살다 저런 사람도 있구나. 새삼스레 느끼는 순간이었다.
어느덧 분교대에서의 시간도 흘러가고, 이동간의 제식, 큰목소리로 대답하기가 이제 쑥스럽지 않았다. 그동안의 시험도 나름 괜찮게 쳤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포상내역을 살펴보면, 1등이 사단장 표창과 4박 5일간의 달콤한 휴가! 2등이 연대장, 3등이 대대장이었던가 각 3박4일을 준거 같았다. 그리고 상위 10%로 안에 들면 자신의 부대에서 2박3일간의 휴가를 준다고 하였다.
내심 난 상위 10%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총수인 순수 전투병력 가츠군은 따른 교육생들보다 훨씬 유리했다. 어차피 기능반이라도 배우는 내용은 소총중대의 병기본내용이었기 때문에, 항상 시험식교육을 하는 소총중대원으로서 한달에 한번씩은 꼬박꼬박 병기본훈련을 하는 소총수로서 내가 유리할 수 밖에 없었다. 남들은 그냥 외어서 푸는 문제지만, 나는 이미 몸소 실천한 내용을 풀기 때문이다.
이등병때부터 사단 최단기록 철조망설치 중대, 화생방 시범식부대, 각종 지뢰 및 장애물 설치 시범식교육, 부대이동 및 정찰 등등 평소 맨날 중대에서 하는 짓을 평가받는 가츠로서는 특기병 교육생들보다 못하는 게 비정상일지도...
그리고 퇴소전날, 드디어 첫 야외교육인 각개전투를 나갔다. 신교대랑 분교대는 같은 대대라서 같은 각개전투교장을 이용한다. 이야 1년 6개월만에 돌아온 신교대 각개전투교장. 감회가 새롭다.
우리 분대가 첫스타트로 평가가 시작되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실기평가이기 때문에 점수가 상당히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매번 신병이 올때마다, 각종 동원훈련이나 참관교육때마다 각개전투 조교로 활동한 나로서는 각개전투교장이 내 집이었다. 돌무덤 3보전부터 포복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몇방 쏴주고 왼쪽으로 돌아나오는 현란한 각개기술을 발휘하자, 교관의 흐뭇한 미소가 보였다.
부대이동이나 상황묘사에서도 현란한 손놀림으로 완벽하게 수화를 해내었다. 그렇게 분교대의 모든 교육과정이 끝났다. 상위 10%에는 확실히 들어가겠군. 2박3일이라도 나가면 금,토,일 휴가니깐 헉... 이건 대대ATT 뛰어야되는데 ㅜㅜ
아 3등은 될까? 사실 3등까지는 확신이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날 아침 여느때처럼 부지런히(?) 내무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조교가 나를 애타게 부른다. 행정반으로 가보니 교관이 나의 군번과 소속을 물어본다.
'군번 05-710000 77연대 2대대 5중대 상병 가츠입니다'
얼핏보니 상장명단을 작성하고 있는 거 같았다. 허거덩, 내 이름이 가장 최상위에 있는 것이 아닌가? 설마 내가 1등? 헉 태어나서 1등 해본 적이 없는데, 군대에서 한번 해보는구나!
그러고보니 이런 권위있는 상장을 받아본적도 없는 거같다. 가문의 영광이다 ㅜㅜ
그렇게 시상식을 마치고 정말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 포스로 대대로 복귀했다. 아마 그때 군생활하면서 가장 위풍당당하게 대대지통실 문을 열고 들어간거 같다. 마침 간부회의중이었다.
평소 친한 정훈장교님이 보자마자
'야 가츠 왔냐? ㅋㅋ 이거머 군장이쁘게 싸가지고왔네.. 뭘 보고해~ 그냥 나가서 연병장 천천히 돌고있어~ ㅋㅋ'
이윽고 매서운 중대장님과, 교육장교님의 눈빛이 나를 응시한다. 이에 나는 입술에 미소를 머금고 주머니에서 메달을 꺼내서 살포시 목에 걸어주는 세레모니를 펼쳤다.
순간 믿기지 않는다는 대대간부일동, 그리고 사태를 파악한 정훈장교님 가라사대
'야~ 머야 어디서 사왔어! 이색히는 잔머리가 겁나 좋아요~ 성적표줘봐!'
가츠는 1/121등이 선명히 찍힌 성적표랑 내일 날짜로 출력되어있는 사단장표 휴가증을 살포시 건네주었다. 저 내일부터 휴가입니다. 다음주 대대ATT 고생하십시오 아흑흑... 다음주 스위스전있는데 아아앜ㅋㅋㅋ 제가 결과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절대권력자 가츠는 위풍당당하게 중대로 복귀하였다. 보다 한층더 업그레이드된 권위를 지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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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사단장님 정말 오랜만에 듣네요...
하정렬 사단장님은 기억나실래나 모르겠네요...^^
그 분은 지금 청와대 참모로 계신다고 하던데...ㅎㅎ
잘 보고 갑니다.
전 2중대 행정병인데요...^^
끝까지 뺑끼써서 분교댄 안 갔어요...ㅋ
지금와서는 어찌 이리 후회되는지./.
군대에서 할 건 다 해보고 나와야 하는데...ㅠㅠ
하하~! 하정열사단장님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ㅎㅎ
저희 신교대 입소식, 퇴소식할때 뵈었습니다 ㅋㅋ
지금 청와대가 있으시군요 ㄷㄷ
하긴 사단장님 독일유학파의 엘리트셔서 성공하실 줄 알았습니다 ㅎㅎㅎ
우리 계원들도 요리조리 다 피해서 ㅋㅋㅋ
덕분에 제가 갔다왔지요 ㅋㅋㅋ
전 소총수인데 ㅋㅋ 기행반가서 오히려 득이었죠 ㅋㅋ
전 신병교육 사격우수표창도 운전병으로 간다고 못받고 분교대는 말년이랑 설렁설렁했는데 시험치고 발표나기 전날 저희포대 선임하사님이 찾아 오셔서 저 부르더군요
"야 너 말년인데 진짜 열심히 했구나"
"아 머 그렇죠(난 날밤깐적도 없었다. 시험전날은 근무도 없어서 취침땡하자마자 자서 담날 기상나팔 불때까지 다른사람들 공부하는데 혼자서 자고 있었다.)"
"근데 성병장 너 이번에 5등한거 아냐?"
"헉 제가 그렇게 잘했나요?"
"응 근데 너 김상병이 이때까지 포상 한번 못간거 알지?"
"네"
"니가 희생해라."
"네 (젠장)"
참고로 우리 포대는 근무자가 없어서 포상휴가가 짤리는 부대 포상휴가 대부분 상병말에는 2번씩은 나갔었죠. 부대장이 좋아서 대대장이 휴가증 난발해서 이런게 아닙니다. 포상에만 무지 강한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면됩니다. 참고로 체육대회에 나가면 우린 포상만 챙겨서 오죠. 세탁기 탈수기 이딴거 다 필요없죠. 참고로 포대 ATT 포대장이 전역 6개월도 안남긴 시점에서 최우수 포상휴가 3명 +@ 거의 불가능하지만 가능하다는 걸 보여 주었죠
아 분교대 퇴소후 김상병녀석과 성적바뀌치기 때문에 군장 돌뻔했습니다. 그 후 전 그녀석이 말년되어도 돌대가리라고 불렀고 그놈은 저때문에 휴가 갔기 때문인지 영원한 나의 꼬봉이 되었습니다. 전역하는날 울고 불고 나도 안울었는데.
하하하하하
포상에만 무지 강한 녀석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정말 대단해요~! ㅋㅋㅋㅋ
이야 그래도 멋지네요 ㅋㅋㅋ
김상병은 정말 최고의 포상휴가를 다녀왔군요 ㅋㅋㅋ
근데 선임하사님도 무지 착하시네요 ㄷㄷㄷ
왠만하선 그런 부탁은 잘 안할텐데 말이예요 ㅎㅎ
재밌는 댓글 감사해요~!
자주 오셔서 남겨주세요 ㅎㅎ
하나같이 다 자기자랑
아나 깐돌이~! ㅋㅋㅋㅋ
죽는다!
ㅎㅎ 04군번 통신대대 출신이에요.
분교대는 밥먹는건 참 행복했었던거같네요.
대대밥보다 맛있었던^^;
반가워요 아이디얼님~!
하하 저도 그생각했어요 ㅋㅋㅋㅋ
확실히 소수로 먹다보니~! 질적이면에서 우수하더군요 ㅎㅎㅎ
대대의 찐밥은 ㅜㅜ 싫어요!
제가 근무를 할때는 분대장교육을 다녀오면 계급이 하사가 되었더랬죠!!! '일반하사'..
상병때 분대장 교육을 갔다온 후임병이 하사계급을 달고와서 병장들과의 갈등을 유발시키곤 했죠..
나중에 하두 문제가 되니 병장급들만 교육을 보냈던 기억이 나네요...
우리때는 서로 안갈려고 했는데...
앗~ 저도 들었어요~! ㅎㅎㅎ
분교대를 다녀오면 하사로 탈바꿈된다고 하더라고요 ㄷㄷ
정말 원래 고참들과 좀 애매해지겠더라고요 ㅋㅋㅋ
저희때는 거의 왠만하면 모두 분대장을 거치고 전역하기에..
분교대는 다 수료해야 했답니다 ㅎㅎ
M60보니...감회가 새롭네요...저 병장 달때 K-3가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라...소대에 화기분대가 있어 소대별로 M60이 2정씩 있었지요...그래서 행군하면 혼자 맬수 없으니까 짬안되는 애들끼리 돌아가면서 교대로 군장위에 얻어놓고 행군하더랬지요...평지면 모르겠는데...ㅎㅎ...산악지역 타고 다닐려면 죽음이...참고로 전 21사단 출신이랍니다....분대장급 맨 앞에서 서고 그 뒤로 2번사수부터 짬 안되는 순서로 줄서고...돌아가면서 그 무거운거 교대로 매면서 행군하는데...자대 배치받고 첫 행군때 부대 복귀 직전에 분대장이 무슨 심술이 났는지 제 순서가 되자...바로 뒤로 오더라구여...당연히 교대는 못하고 주둔지까지 혼자 매고오는...ㅡㅡ...원래 부대복귀하기 직전 코스가 젤 험하잖아여...그때는 무슨 깡으로 했는지 참...다행히 낙오는 안해서 살았지만요...후...암튼 60만 보면 그 생각이...그러고 보니 저 무식한 총을 총구 잡고 한손으로 쭉 펴서 들어올리는 고참도 있었더랬지요...
헐 ㅋㅋㅋ
사악한 분대장의 신병 길들이기였나요? ㄷㄷㄷ
낙오하면 제대로 신고식 할려고 하였나 본데;;;;
낙오를 안하셨군요~! >.<
60를 한손으로 들어올리기라 ㄷㄷㄷㄷ
전 K-3로 못했는데 말이예요 하하;;;;
가츠님 글 시간 날때마다 (중3인데 방학이라 거의 숙제할때 빼고 보는..ㅎㅎ)
제가 밀리 매니아(?)인데 군대를 안가봐서 이해가 안갈수도 있었는데
하나하나 잘 설명해주시고 재미있게 글로 써주시니 더욱더 잼네요.........
참고로 장교 지망생이라능 ㄱ-;...... 중3이라는 나이에...
첨 댓글 달았네요 한 5일동안 읽기만 하다가 너무 재밌어서 댓글 달고 가요~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올려주세요~
반가워요~! 미래의 장교님~! ㅎㅎ
하아 장교 지망생이군요!~ ㅎㅎ
제일 좋은건 육,공,해사~! 가는거죠~!
아니면, 대학교가셔서 ROTC를 가는 것도 괜찮아요~! ㅎㅎ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ㅎㅎ
멋진 장교가 되실 수 있을거예요~!
아자 아자 파이팅~!
78연대 7중대에서 일반하사(원주1하교)로 근무하다가 4대대 생기는 바람에 14중대(하사들만 있는) 가서 거기서 80년 7월에 제대했는데요..
이제는 정말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이글을 읽다보니 안 좋았던 기억보다는 그래도 좋았었다, 젊음이 좋았었다는 좋은 기억이 더 많은 건 웬일인지..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이라면 모두모두 한권씩의 책은 쓰고도 남을 만큼 사연도 많지요.
제가 그 나이로 돌아갈 수 있다면 군대 한번 더 가고 싶군요..진심으로(그때는 33개월)
사무실에서 가츠님의 글에 빠져 하루를 보냅니다.
글솜씨가 지금 바로 소설가로 등극하셔도 손색이 없겠읍니다.
근데 이거 언제 다 읽나?ㅋㅋㅋ
이기자!
하하 반가워요 선배님~!
예전에는 분교대가면 하사로 진급되는거 같더라고요 ㅎㅎ
저희때는 거의 전원이 분교대입소해서 분대장 잡는데도
그냥 병사로 전역한답니다 ㅎㅎㅎ
하하~! 재밌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ㅎㅎ
천천히 읽으셔요~! ㅎㅎㅎ
몰아서 읽으시면.. 나중에 심심하시다능~! ㅎㅎ
분교대...제가 근무한 22사단은 분대장 교육이 4주입니다. 밥안되는 조교아저씨들 말듣는 것 그리고 PX와 전화이용 박탈은 정말이지 거의 고문 수준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분대장교육때문에 전 그해의 유격을 제껴버렸지요...제 군생활의 유일무이한 유격훈련인데, 그래서 유격훈련 나오면 전 할말이 없어요. T.T (아시겠지만 철책사단은에서 근무하는 인원들은 재수가 아주 없어야지만이 군생활에서 유격을 두 번 뛰지요. 보통 한 번은 GOT에서 있으니 자동으로 제껴버리지요.)
그래도 그때 분교대는 자대보다 낳았습니다. 교육훈련도 훨 수월하고 작업이라는 것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대신 평일오후다마 단독군장 구보가 있었습니다. 구보전에 항상 도수체조로 몸을 풀었죠... 몸풀때보면은 신교대 인원들의 단독군장을 보면은 초강력FM, 분교대 인원들은 방독면 주머니에 방탄모랑 소총올리면 주머니가 가라앉는것이 확실히 보이더군요. 모두들 귀찮으니까 방독면은 관물대에 짱 박았지요...^^; 에고고 그 단독군장구보는 왜 그리도 힘들던지....자대에서하던 완전군장 구보보다 훨 귀찮아서 그런 것이겠죠...
성적은 그나마 상위 10% 턱걸이해서 중대간부들의 버럭은 피했습니다. 이번글도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다시 한 번 재미있는 글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왕~! ㅋㅋㅋ
분대장교육 4주라니 ㄷㄷㄷ
아찔해요!.. 전 가장 싫었던게..
내무실에 누워있지 못하게 하는 거 흑....
정말 훈련병이 된 거 같더라고요...
우와 GOP의 매렵은.. 무지막지한 훈련을 제낄 수 있다는... 캬하;;
멋져요~! ㅎㅎㅎ
다시 처음부터 정주행중입니다...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ㅋㅋ
근데 대단하십니다.. 1등이라니...ㅋㅋㅋ 전 아직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데...ㅜㅜ
더 놀라운 것은 가츠님에게 일등상을 부여했던 사단장님이...
지금 학군교장님(ROTC학교장님) 이라는 것..... 처음에 이름보고 놀랐습니다..ㅋㅋㅋㅋ
와우~! 사단장님께서 그 곳에 계시는군요~! ㅎㅎ
정말 신기하네요~! ㅎㅎ
역시 세상은 좁군요~! ㅎㅎ
ㅋㅋㅋ
훈훈했던 옛 생각나게 해주셔서 고맙구요
안녕하세요~
어제 집에서 국군방송 신나군(아마 재방이었던듯)에서 가츠님 처음보고
또 님이 27사 나오셨데서 신기해서 오늘 들어와봤거든요~ㅋㅋ
근데 가츠님 저랑 분교대 같이 가셨었네요~ ㅋㅋㅋ
저도 아직 기억해요 888-888 아저씨ㅋㅋㅋ그런 총번이 있을줄이야..
자대 복귀해서 888-888봤다고 애들한테 얘기했었는데ㅋㅋ
아 저는 04.11군번이고 포병연대 239포병대대였습니다.
분교대 때 우리 첨에 120명 정도로 시작해서 첫 시험에 20여명 떨어뜨리고
100명 안되는 인원으로 교육 받았던게 기억나는군요
당연 월드컵 본 기억도!! 사투리 쓰고 착하던 키 큰 소대장 DMB 연결해서 새벽에 스크린에 쏴서 본ㅋㅋ
그 분 산에 올라가서 찍었다던 사진도 기억나구요^^
근데 골 먹고 응원열기도 식고 하나둘씩 잠을 자던ㅋㅋ
저도 당시에 필기 시험은 만점을 받았지만 상점이라든지 몸으로 하는 부분에서 점수를 못받아서
포상 못따고 10등 한 기억이 나네요
제가 포병에 운전병이었는데 아무래도 병기본은;;;;ㅋㅋ
그래도 우리 대대에선 1등;;;ㅋㅋ
그때는 포상에 눈이 어두워 상점 따려고 앞에 나선 아저씨들이 미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당연히 맞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하는게 맞는거죠ㅋㅋ
저희연대는 워낙 성적이 안좋아서 10%에 들면 2박3일을 받았어요
저는 가츠님이 앞에서 상 받는걸 뒤에서 본 사람이군요ㅋㅋㅋ
미웠었어요~ 지금은 아니지만ㅋㅋㅋㅋ
암튼 지금 정주행 시작했는데요 서른이 된 지금(군대 늦게 갔어요;
앞으로도 재밌는 얘기 많이 꺼내주셔서 여러 사람들이 저처럼 미소를 띄우게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네요
화이팅입니다!!!!^^
와우! 반갑습니다 전우님! 이기자! ㅎㅎㅎ
신나군을 보셨군요! 앜ㅋㅋㅋㅋㅋㅋ
부끄러워요! ㅎㅎㅎㅎ
오호 그러고보니 저희는 분교대 동기이네요! 하하;;
왠지 더 친근함이 들어요! ㅎㅎㅎ
평소에는 포병 아저씨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분교대에서 많이 뵐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ㅎㅎ
밥 먹으로 갈 때, 큰 걸음이 좀 안습이긴 했지만 ㅎㅎ
무척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ㅎㅎㅎ
인터넷에서 다시 만나게되니, 정말 반갑습니다! ㅎㅎ
자주 놀려오셔서 지난 날의 추억을 같이 공유해보아요! ㅎ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하시는 일 만사형통하시길 기원합니다!
이기자 사랑합니다! ㅎㅎ
분교대 06-16기 입니다.ㅋㅋ 밥먹을때 큰걸음 과 군가 아직도 기억나네요~
맨날 전우만 부르니까 조교가 전우금지 명령을 내렸었는데~ㅋㅋ
명령하달 시험볼때 같은 분대 77수색중대 아저씨의 멘트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헬기는 절대 우리를 기다려 주지않는다!!" ㅋㅋㅋㅋ 조교도 배잡고 웃었다는....
참고로 월드컵은 523ASP에서 봤습니다.ㅋㅋ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헬기는 절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명언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와 제가 몇기였드라 ㄷㄷㄷ
비슷한 시기인 거 같은데 ㅎㅎ
다시 제 글을 읽어보니 12기였군요! ㅋㅋㅋㅋㅋㅋㅋ
ㅋ독도법 할때 상황이 제가 했던 상황과 너무나 비슷 하네요.. 저희조 가 뒤에 있어서 중앙 복도까지 나와서 열심히 들었었는데.. ㅋㅋ 전 분교대 아파가면서 했습니다. ㅋ 겨울철 매일 새벽에 7시간씩 산타도 안걸리던 몸살이 분교대에서 몇칠 연등하니깐 나더군요,,, 그래서 퇴소까지 할뻔 했답니다.. 다행히 해열제 맞고 나아서 남았다는..
전에도 말씀드렸다 시피 저도 정말 열심히 해서 분교대 6등 했습니다.... 저희는 타 사단에 파견가서 하는 거기 때문에 6등은 엄청난 성적이죠... 사단 예하 직할대는 한달 전부터 공부 하더군요.. 전 분교대가는거 입소 2일 전에 알고 교육자료는 입소 전날 밤 11시에 계원한테 받아서 공부했죠.. ㅋㅋ
그래도 아파가면서 한 덕에 성적도 좋았고 우리 중대 병사들의 최고의 적 특전사 출신 무적의 행보관님이 절 말년때까지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죠 ㅋㅋ
그 때의 열정을 잊지말고 살아가자구요! ㅋㅋㅋ
훗... 27사단 77연대 신병교육대 각개교장이 언제 만들어진건지 아시나요? ㅋㅋ
2000년 3월즈음 부터였어요 ㅎ
제가 4월군번인데... 신교대 입소하자마자부터 각개교장 새로 만든다고 바위덩어리 파내고 나무 뽑아내고...
난리도 아니었다는... 신병교육 기간동안 훈련보다 작업을 더 많이한 기수였다죠 ㅡ,.ㅡ;
참... 전 사단 수색대대에서 복무했습니다. 00년 4월부텀 02년 6월까지...
반갑네요 군생활이야기 책까지 내신 분이 이기자 출신이니 ㅎㅎ
반갑습니다 선배님! ㅎㅎ
어쩐지 각개교장이 근사하더라고요! ㄷㄷ
후우.. 나라시하신 거 보면 정말 군인이었기에 가능하였겠죠? ㄷㄷ
우아.... 현역으로 뛰고있는 분대장 교육대 조교입니다 ㅠㅠㅋㅋㅋ 교육생분들은 이런생각을 가지고 계셨군요
저희부대 예전 모습을 보는거 같아서 신기합니다
반갑습니다 후배님! ㅎㅎ
분대장 교육생들이 말 안듣다고 너무 심려치 마세요! ㅋㅋ
그래도 항상 제 위치에서 맡은 바 근무를 다하는 군인들이 있기에
군대가 돌아가는 거 아니겠습니다!
용호연대 아자 아자 파이팅!
안녕하세요. 님이 분교대 입소했을 때 조교였던 사람입니다^^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고자 검색하다가 이렇게 오게 되었네요.
님이 입소했을 때 저는 아마 이등병 조교였을 것입니다ㅎ
이렇게 보게 되네 감회가 새롭네요 ㅠㅠ
와우!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공유하여 그런지 더욱 반갑네요! ㅎㅎ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저는 지금 27사단 분교대 조교입니다 ㅎㅎㅎ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전우님!
이제 부대가 많이 달라졌겠죠? ㅜㅜ
저도 이기자 분교대 1등했어요
그때는 9중대가 분교대 였나요?
제가 있을때가 07년도 였는데 12중대가 분교대로 바뀌었답니다.
저는 77전투지원이에요
바뀌었나봐요? ㅎㅎ
당시에 12중대는 신교대였는데 ㅋㅋ
09 군번인데 12중대가 분교대에요. ㅋㅋㅋ
반갑습니다! 전우님! ㅎㅎ
이제 10년이 다 되어가네요! ㄷㄷ
11년1월 이기자 분교대 조교출신입니다 저 복무때는 각개교장이 1대대랑 2대대 사이에 있던 곳에서 교육했었어요ㅋㅋ자대가 생각나는 글이네요..ㅋㅋ 참고로 현재는 12중대는 분교대임무끝났다고하고 신교대랑 섞여서 돌아가면서 한다고 들은거 같은데 저도전역 후 일이라 정확힌 모르겠네요ㅜ
그새 많은게 바뀌었네요~ ㅎㅎㅎ
그래도 사창리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 좋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