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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상병때 겪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6년 2월이다. 가츠상병은 대망의 혹한기훈련을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강원도 화천의 2월은 혹한의 추위 그 자체였다. 항상 새벽이 되면, 온도계의 온도는 영하 15도 이상으로 내려간다. 영하 20도가 나오는 날도 허다하다. 그런날 새벽 3,4시에 일어나서 초소근무를 나간다고 생각해보자.
따뜻한 내무실에서 곤히 자다 일어난 병사는 몇분후 체감온도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초소에서 그대로 동태가 되어버린다. 경계근무시간은 고작 1시간 30분이지만, 충분히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그런데 혹한기훈련은 4박 5일동안 추운 산속에서 극한의 추위와 버티는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 혹한기훈련에 관한 포스팅을 할때 상세하게 이야기하겠다.
혹한기 훈련을 하루 앞둔, 일요일 오전, 가츠상병은 패닉상태에 빠져있었다. 모든게 무의미해보였고, 만사가 귀찮았다. 당장 내일부터 무한행군, 추위와의 전쟁, 배고픔을 생각하니 정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어김없이 행정반에서 전해오는 전파~!
'이기자~! 이병 최OO, 제 3소대 용무있어왔습니다. 전병력 종교행사 집합하시랍니다~!'
아나~! 종교행사~! 당장 내일이 훈련인데,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지도 않을 거면서~! 흑흑... 사실 나는 기독교인이다~! 어릴때부터 교회를 다녔고, 중학교 이후로는 자주 가지 않았지만, 항상 마음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몸을 추스리며 종교행사 집합할려고 하는 찰나, 동기인 박상병이 나에게 다가왔다.
'가츠야~! 오늘도 교회가나?'
'그럼 법당가겠냐~! 바보~!'
'교회가면 초코파이 한개 주지?'
'응~! 레스비 한캔이랑 초코파이 하나줘~!'
'그럼 나랑 성당갈래? 잘만하면 계속 먹을 수 있어~!'
'헐... 진짜? 진짜? 가자가자~!'
사실 교회와 법당은 우리 연대안에 위치하고 있고, 성당은 부대밖, 사창리에 위치한다. 그래서 천주교 종교행사는 육공을 타고, 사창리에 위치한 이기자성당으로 가야된다. 고로 다른 종교행사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또한 추운 겨울날, 육공트럭, 뒷좌석에 앉아서 가면 그대로 동태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진짜로....
하지만, 오늘은 왠지 다른 곳으로 한번 가보고 싶었다. 기분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천주교 종교행사 대열에 합류하여 위병소 앞에서 우리를 태우고 갈 육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 육공이 도착하였고, 잽싸게 올라탔다. 우리를 태운 육공은 굉음을 내며 신나게 달리기 시작하였고, 송곳같은 칼바람이 우리를 향해 파고들었다. 나는 잽싸게 귀도리, 목토시, 벙어리장갑으로 완전무장하고 박상병을 꼬옥 껴안았다.
'아나~! 겁나 추워~! 너무해 ㅜㅜ'
그렇게 10여분을 달렸을까? 사창리 뒷편에 이기자성당에 도착하였다. 이미 다른 연대에서 온 병사들로 성당앞 광장에는 어수선하였다. 그러고보니 군생활한지 14개월이 다되어가는데, 성당은 처음 와봤다. 순백의 성당외벽을 보니, 참 깔끔하고 아름다웠다.
미사시간이 다가오자 장병들은 하나 둘씩, 성당안으로 입장하였다. 사실 어렸을때, 외할머니를 따라 성당을 몇번 가보았기 때문에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성당안으로 들어서자 오른쪽 좌석부터 차례대로 앉기 시작하였다. 박상병은 나의 팔을 잡더니 최대한 늦게 입장하였고, 우리는 가장 뒷줄에 자리를 잡았다.
장병들이 모두 입장하자, 곧 민간인들이 입장하였다~! 얼레? 민간인들과 같이 미사를 받는 것이었다. 기독교나 불교 종교행사는 모두 부대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병사들만 있었지만, 이곳은 사창리에 위치한 성당이었기 때문에, 사창리 주민들과 같이 받는 것이다.
'야~! 군인들만 미사보는거 아니었어?'
'응~! 천주교행사는 민간인들도 와~! 너 여태 몰랐던거야?'
'헐~! 그럼 이쁜 누나들도 오겠네?'
'당연하지~! 천주교 퀸카를 니가 아직 모르는구나~! 오늘 제발 와야할텐데~!'
'야이 치사한놈~! 진작 말했어야지~! 지금까지 몰랐잖아~!'
나는 문에서 입장하는 민간인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대개가 할머니나 아저씨, 아주머니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성당이 찬란한 빛으로 가득차더니, 눈부신 그녀가 입장하였다.
헉~! 엄청난 미모의 여인이 등장하였다~! 이럴수가~! 이런 미인을 지금까지 혼자만 본 박상병에게 배신자~!라고 구박하였다. 동기밖에 남는게 없다고 하였는데, 동기도 필요없다~! 어흐흑흫ㅜㅜ
나는 미사를 드리면서도 계속 여신님을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기도하는 모습이, 그냥 한 편의 중세 성당 벽화였다. 어쩜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지? 내가 예수님이라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그녀의 기도를 들어주실꺼야~! 저에게 기도하세요~! 제가 목숨걸고 들어줄께요~!
그렇게 미사가 계속 진행되었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 분의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들어오시더니 조용히 여신님 옆에 앉으셨다. 아~ 정말 부럽다~! 나도 민간인이었으면 그녀 옆에 앉을 수 있었을텐데, 군인이라는 현실에 너무 서글퍼졌다.
갑자기 우리 앞줄에 앉아있던 다른 부대 장병들이 수군수군거리더니 계속 떠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명색이 종교행사인데 떠들다니, 무개념들이잖아~! 하지만, 다른 부대 장병들이라서 뭐라고 말하기도 어색하였다. 다소 시끄러웠을까? 좌측에 앉아있던 여신님이 고개를 돌려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러나 앞줄에 있던 장병들은 못보았는지 쉬지않고 계속 떠들고 있다. 그러자, 여신님 옆에 앉아있던, 지각하신 아저씨가 손가락질을 하셨다. 얼레~! 저 아저씨 어디서 본거 같은데.. 갑자기 박상병이 나에게 말하였다.
'가츠야~! 저 아저씨, 사단장님이시다~! ㄷㄷㄷ'
'헉~! 진짜? 그럼 도대체 저 누나는 도대체 누구야?'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간부님 딸이거나 주민이겠지?'
'혹시 사단장님 딸아니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사단장님이랑 닮은구석이 하나도 없잖아~! 줏어오지 않는 이상 불가능해~!'
'그..그렇치~!'
이제보니, 좌측에 앉은 민간인들, 할머니와 할어버지를 제외하고는 죄다 간부님들이거나 가족들이었다. 저쪽에 앉아계시는 연대장, 대대장, 참모들부터 시작해서 주임원사, 행보관, 소대장들까지 죄다 간부들이었다. 헐... 여긴 완전 지뢰밭이구나~! 아니나 다를까? 좀전에 떠들었던 장병들 자리로 사복차림의 간부님들이 조용히 다가오셨다.
간부님들은 각각 양사이드에 앉으시더니, 장병들의 어깨를 조곤조곤 주물려주셨다. 그제서야 장병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였고, 그대로 얼음이 되어버렸다. 그들의 목덜미에서는 연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쯧쯧~! 분위기 파악못하더니~ 성당에서 바로 지옥으로 직행하겠구나~!
여신님은 이 모습을 지켜보시더니, 귀엽게 피식~ 웃으셨다~! 하앍하앍~! 저게 정녕 사람의 미소란 말인가? 그렇게 황홀해하고 있는데, 미사가 끝나버렸다. 이거 1분도 안한거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니~! 정말 안타깝다~! 이제 좌측 좌석의 민간인들부터 퇴장하기 시작하였다.. 사단장님 내외가 먼저 나가셨고. 간부님들도 계급별로 줄줄이 퇴장하였다.
그리고 그녀도 우리곁을 지나 문으로 사뿐히 걸어나갔다. 안돼~! 또 일주일을 어떻게 참어~! 흑흑...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전 장병이 모두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아낰ㅋㅋㅋ 누가 군인들 아니랄까봐~! 병사들은 그녀의 정체에 대해서 아무도 몰랐다. 모 연대 주임원사의 따님이다~!가 가장 유력한 정보였는데, 그것조차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가츠야~! 이제 초코파이 받으러가자~!'
'응~!'
박상병이 말한 꼼수는 의외로 쉬웠다. 교회나 법당에서는 병사들이 문을 통해 나갈때, 군종병들이 하나씩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므로 나가면서 받으면 끝이었다.
하지만 성당은 마당에서 간부 가족분들께서 장병들에게 나누어주셨다. 수많은 장병들 사이에 줄을 서서 한개씩 받은 다음, 잽싸게 건빵주머니에 넣은 다음, 다시 돌아가서 줄을 서서 또 받는다. 그리고 또 다시 돌아가서 또 받는다~!
그렇게 시간이 한참 지나도 초코파이 행렬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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