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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꼭 참석하겠습니다!"
며칠전 춘천으로 오라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일전에 신나軍 촬영으로 인연을 맺은 최PD님께서 새로운 작품을 준비 중이시라며 자문을 부탁하였다. 나를 공중파에 데뷔시켜 주신 최PD님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기에 흔쾌히 승낙하였다. 지난번에는 차를 가지고 이동하였는데, 돌아오는 길에 너무 피곤하였다.
"추억도 되살릴 겸! 버스타고 가자!"
현역시절, 휴가복귀할 때마다 항상 버스를 타고 갔다.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춘천으로 가는 버스는 하루 5차례가 있다. 이용객이 적기 때문에 직행도 아니었다. 포항-경주-원주-횡성-홍천-춘천을 거치는 풀패키지 코스이다. 경주에서 타면 장장 4시간 40분이 걸린다. 그렇기에 휴가 때마다 항상 출발일과 복귀일은 이동하면서 날렸다. 춘천에서 다시 사창리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만 하였다.
"춘천사는 동기가 어찌나 부럽던지 몰라!"
"1300원 올랐네!"
마지막으로 탄 게 2007년 1월이었으니, 3년이 지났음에도 크게 오른 거 같지는 않았다. 아쉽게도 버스에는 군복을 입은 군인을 볼 수 없었다. 휴게소에 들리면 맛있는 거라도 사줄려고 했는데 말이다.
"가츠님이 뭘 모르네! 군인이 더 부자거든요!"
하긴! 한창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군인들이 더 부자일 수도 있겠다. 간밤에 작업을 하느라 한 숨도 자지 않았기에 출발하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졌다.
"여전하군!"
얼마나 잤을까? 몇번의 뒤척임 끝에 버스는 어느새 춘천시외버스터미널에 당도하였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지만, 공기는 무척 상쾌하였다. 터미널의 모습 또한, 전혀 변한게 없었다. 이등병 시절, 어울리지 않는 군복을 입고 백일휴가를 나왔을 때나, 말년휴가를 복귀하던 때, 그리고 민간인 신분으로 온 지금이나 터미널은 변한 게 없었다. 정작 이용하는 나의 감정만이 극과 극이었다.
"오오! 7사단 아저씨다!"
벤치에는 바로 옆 사단인 7사단 장병이 버스를 기다리며 잡지를 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보니 불현듯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나 또한, 항상 이 시간에 도착하여 바로 저 곳에서 사창리로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리곤 하였다. 눈 앞에 있는 장병이 나를 대신하여 저 자리를 지켜주고 있었다.
문득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사진을 확인하다가 7사단 장병이 보고 있는 잡지가 궁금하였다. 마음에 걸리는 잡지가 있어서 찍힌 사진의 표지 부분을 유심히 대조해보았다.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그가 보고 있던 잡지의 정체는 군인들의 영원한 친구, 도도한 맥심이었다. 남북이 통일되지 않는 한, 맥심은 절대 망하지 않을 거라는 의견에 내 인생을 걸 수도 있다. 슬슬 발걸음을 옮길려는 찰나, 낯익은 버스가 한 대 들어왔다.
"당장이라도 타야할 될 거 같은 기분이야!"
사창리로 가는 운명의 버스이다. 마치 당장이라도 타야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춘천까지는 그래도 아직 도시적인 느낌이기에 괜찮다. 하지만 저 버스를 타는 순간, 강원도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급격하게 우울해진다. 사진을 찍는 와중에 맥심을 보던 7사단 장병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그렇게 그는 내 곁을 떠났다. 아니 사회에서 떠난 것이다.
"조국을 부탁해!"
자리를 옮겨 터미널 내부로 들어갔다. 예전에는 입구 쪽에 패스트푸드점이 있었는데, 사라졌다. 아직도 백일휴가 나온 날, 동기들과 앉아서 햄버거를 먹은 기억이 생생한데,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오오! 오바로크 집이다!"
군인에게 있어 오바로크는 장인정신이다. 주로 사창리에 있는 군용품점을 이용하였다. 사창리에는 5-6군데의 군용품점이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다. 어차피 같은 물건이나 가격은 똑같기 때문에 결국은 얼마나 오바로크를 정성스레 잘 치냐에 따라 수입이 결정된다.
사진 속에 있는 군용품점도 딱 한번 이용한 적이 있었다. 병장을 달기 전에 나온 휴가 때 방문하였다. 당시 사창리에서 버스시간이 촉박하여 오바로크를 치지 못하고 춘천으로 넘어왔는데, 당장이라도 병장 계급장을 달고 싶은 마음에 들렀다. 하지만 오바로크 실력은 사창리 군용품점이 으뜸이었다.
"항상 맥심을 사던 곳이야!"
군용품점 맞은편에는 휴가 때마다 맥심을 구입한 가판대가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순간 나의 동공이 흔들렸다. 카메라 렌즈에 무척 낯익은 책이 한 권 들어왔다,
"이...이것은?"
"악랄가츠의 군대이야기!"
역시 군인들의 발길이 잦은 춘천에서는 먹히는 책인가보다. 가판대에 내가 쓴 책이 당당하게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소심하게 촬영을 하던 나는, 급 당당해진 자세로 바꿨다. 누군가 구입하는 장면을 찍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없었다. 정말 구입하면 바로 달려가서 감사하다고 했을텐데 말이다.
"당신은 은인입니다!"
"자동발매기도 있구나!"
나 때만 하여도 없었는데, 어느새 자동발매기가 놓여져 있었다. 역시 알게 모르게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터미널을 나와 택시를 타기 전에 담배를 한 대 물었다.
어느새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그쳤고, 상쾌한 바람이 내 볼을 스쳐지나갔다.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고개를 돌렸는데, 나의 시선을 고정시키게 만드는 것을 발견하였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보는 기분이랄까?
"................"
공중전화부스에는 한 여성이 통화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눈에는 끊긴 전화기를 붙잡고 눈물 흘리고 있는 군인의 모습이 보였다. 정녕 내 눈에만 보이는걸까? 귀신에 홀린 듯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데, 다시 차가운 빗방울이 나의 이마에 떨어졌다. 그제서야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그날은 눈부시게 화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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