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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오늘은 상병때 사령부에서 나온 위생검열에 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6년 3월, 바깥세상은 꽃피는 봄이 오고 있지만 이놈의 군대는 여전히 추위와의 전쟁이었다. 군대에서는 여름과 겨울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굳이 사계절로 만들자면, 무지 추운겨울과 겨울, 무지 더운 여름과 여름이 존재한다.
지난달 혹한기와 전투사격 훈련도 마쳤고, 3월초는 딱히 잡힌 일정이 없었다. 주둔지에서 몇주만 무사히 버티면, 3월말에 계획된 경계파견을 간다. 소대원들은 여느때보다 심리적, 육체적으로 편안하였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행보관님이 중대원들을 전원 사열대로 집합시켰다.
'제군들 잘들어라~! 이틀후, 군사령부에서 위생검열을 나온다고 한다. 오늘부터 금요일까지 우리는 오로지 청소만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청소, 또 청소만 할 것이다. 그 어떠한 지적사항도 나오면 안된다~!'
이건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가? 연대나 사단에서만 나와도 말단 대대급 중대인 우리는 정말 목숨걸고 준비를 한다. 다른 상급부대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령이하는 그냥 동네아저씨들 같고 편하고, 착한거 같다고 하는데, 우리는 연대에서 대위가 검열을 나와도 종일 준비를 하고, 행여 지적사항 나올까봐 벌벌 떤다.
그런데, 군사령부에서 나온다니... 1년넘게 군생활하면서 이런 스케일이 큰 검열은 정말 처음이다. 끽해야 사단에서 나오는 정도였는데 말이다. 그것도 하필 경계파견 나가기 2주전에 오다니~! 2주만 늦게 왔으면 즐겁게 제낄 수 있었는데 말이다.
곧, 분대장들은 행보관님의 지시를 받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이 수요일이므로 우리에겐 2박 3일의 시간이 남아있다. 먼저 중대막사부터 청소하기로 하였다. 중대원 100명이 종일 청소하는데 뭐가 걱정이냐고? 일단 100명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항상 30-40%의 열외병력이 존재한다. 휴가자,근무자,파견자,후송자 등이 말이다. 거기다가 남은 인원에서 또 대대작업할 인원들도 제하고 나면 정작 50명도 채 안된다.
분대별로 임무를 맡기로 하였다. 당시 1분대였던 나는 김병장과 심상병과 함께 내무실 창문을 청소 하기로 했다. 지난 추운 겨울을 대비해 창문은 비닐로 방풍처리 되어있었다. 몇달동안 쌓인 먼지로 창문은 마치 썬팅되어 있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니 근데, 병장과 상병 둘이서 이런 고된 작업을 하고 있냐고 의문이 들지 않는가?
사실 창문은 아주 평화롭고 널널한 작업이다. 밥이 안되는자 조용히 치약과 10원짜리 동전을 들고 화장실로 투입하여라~! 화장실에서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누런 소변기와 대변기를 이탈리아 로마의 특급호텔 욕실처럼 다시 새하얗게 만들어야 된다. 검열관이 화장실을 들어갈려다가 눈이 부셔서 차마 못들어가게끔 말이다. 이때 10원짜리의 용도는 동전에 치약을 묻힌 후 열심히 문지르는 것이다.
일반인 100명이 화장실을 본다면 100명 전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군인 100명이 봐도 99명은 불가능 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단 1명의 행보관이 꿈은 이루어진다라고 하면 정말 거짓말처럼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무리 더러운 소변기라도 치약을 들고 2박 3일 문지르면 마치 거울처럼 반짝반짝 빛이 난다. 취사장의 있는 식판보다도 더 깨끗할지도 모르겠다.
<출처 : 공군 문화홍보부 >
'야 일,이등병들 화장실에서 다 철수하고 병장들 다 투입시켜~!'
앜ㅋㅋㅋㅋ 옆에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잔소리하던 김병장의 얼굴이 굳어진다. 나는 잽싸게 10원짜리를 구해와서 김병장 손에 꼬옥 쥐여주며 말했다.
'김병장님~! 파이팅~!'
사실 매우 친한 고참이니깐 이렇게 장난치는거지, 병장들이 화장실에서 소변기 닦고 있다고 생각해봐라, 그날 후임들은 화장실 다 간것이다. 그리고 정말 목숨걸고 청소해야되는 것이다. 한 치의 방심도 용서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행보관이 노린 윈윈전략이다.
노련한 병장들을 화장실에 투입시켜, 빛나는 화장실 복원에 이바지함과 동시에 나머지 후임들은 병장도 화장실 청소하는데 자기들이 얼마나 열심히 해야되는지 스스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어딜가나 꼭 사태파악을 못하는 친구들이 있다. 배일병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로 뛰어들어가는게 아닌가?
'야 너 머야~! 전투화신고 화장실 왜 들어와? 아니 화장실자체를 왜 들어왔어?'
'일병 배OO~! 죄송합니다! 배가 너무 아파서 어흐흫흑ㅜㅜ'
'오호라~ 고참들이 열심히 쭈그려 앉아서 닦고 있는데, 넌 옆에서 당당하게 다시 갈겨주시겠다?'
배일병은 병장들이 득실거리는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았고, 그 날 저녁까지 그의 행적은 묘연했다. 쾌락을 위해 가는 화장실은 어느듯 죽음의 장소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싸면 죽는다~! ㄷㄷㄷ'
그렇게 첫날 밤 늦도록 죽어라 청소만 하였다. 연시 쓸고 또 쓸고, 닦고 또 닦으면서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날은 개인위생을 중점으로 실시하였다. 이발병은 종일 소대원들의 머리를 밀고 있었고, 밀린 빨래를 하였고, 장구류 및 침낭, 모포, 매트리스를 일광소독하였고, 병장들은 여전히 화장실에서 죽어라 대,소변기를 닦고 있었다.
심지어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청소하였고, 화장실 바닥에 있는 철판을 열자 지하로 가는 길이 열렸다. 나는 정말 1년 3개월 군생활하면서 그게 지하로 가는 통로인줄 몰랐다. 그렇게 지하도 청소하고, 페인트칠도 다시하고 그날도 밤 늦도록 청소만 하였다.
드디어 위생검열이 오기로 한 당일, 전 중대원들은 아침부터 다시 막바지 청소를 하였다. 화장실은 아예 출입이 통제되었다. 그래도 2박 3일내내 청소만 해서 그런지 중대가 많이 깨끗해진 거 같았다. 하긴 누렇게 뜬 병장들 얼굴을 보니 깨끗한게 당연한 것일지도...
'김병장님~! 이정도면 지적사항 안나오겠지 말입니다?'
'야~! 진짜 나오면 나 자살할거다. 나 몸에서 자꾸 냄새나는거 같애... 몸도 근질근질 가렵고 흑흑'
대대에 사령부차량이 들어왔고, 전원 내무실에 위치하여 검열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소대가 지통실에서 가장 가깝기 때문에 가장 먼저 들어올 것이다. 이미 중대장과 행보관님은 우리 소대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곧 지통실에서 검열관이 올라가고 있다는 통보가 왔다.
우리 소대로 들어오는 바깥 출입문으로 사령부 소속의 중령계급의 검열관이 들어오셨고 중대장님은 원기왕성하게 경례하였다. 일순간 긴장한 소대원들을 바라보며 검열관이 말했다.
'음... 그래~!'
딱 그 한마디를 하시고는 내무실을 가로질러 반대편 출입문으로 나가셨다. 그렇게 2박 3일간 죽어라 했던 청소는 단 5초만에 평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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