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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전역하고 처음 받은 예비군 훈련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작년 10월, 당시 서울에서 거주중인 가츠군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아침부터 울리는 낯선 전화번호, 택배아저씨인가? 주문한게 있나 기억해보지만 딱히 생각나는게 없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가츠선배님 되십니까?'
'네 맞는데요~! 누구세요?'
'저는 OO일병입니다. 가츠선배님께서 다음주 향방작계 소집이 예정되어서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꺼져~!'
그랬다~! 원래 동원지정으로 2박3일의 동원훈련을 받았어야 했지만, 죽어도 부대에서 먹고 자기 싫었던 나는 연기하였고, 불과 한달전에 4일동안 동미참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훈련인 후반기 향방작계 6시간이 남아있었다. 정말 이놈의 군대는 전역하고도 못잡아서 먹어서 안달이구나~! 현역일때는 2박 3일 동원훈련 받으러오는 선배들이 어찌나 부럽고, 2박 3일 정도야 옛 추억 떠올리며 즐겁게 할 수 있지~! 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닥치니 이건 정말 재입대하는 기분이었다.
한달전, 매일 아침마다 눈떠서 예비군 훈련장으로 가는데, 마치 이등병때 내무실에서 일어나는 기분이었다. 어찌나 가기 싫던지 정말 울고 싶었다. 그렇게 전화를 받고, 향방작계 전날, 밤새도록 뻘짓하다가 집으로 가는 첫 차를 타고 내려왔다. 집에 도착하여 군복을 갈아입고 나갈려다가 거울을 봤는데, 이건 마치 도살장에 끌러가는 소마냥, 불쌍한 모습의 한 남자가 있었다.
백문이불여일견 아니겠는가? 사진만봐도 확실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멀쩡하다가도 군복만 입으면 이상하게 급 우울해지고 얼굴에 생기가 사라지면서 몸이 무거워진다. 정말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투덜투덜거리며 전투화까지 챙겨 신고 집합 장소로 갔다.
그곳에는 이미 나같은 우울증 환자들이 대거 모여 있었다. 곧이어 동대장님과 조교 2명이 등장하더니 신원확인과 정신교육이 시작되었다. 지난밤에 너무 무리해서 그런걸까? 이미 나는 패닉상태였고, 의자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다들 예외는 아닌거 같다. 헤롱헤롱~! 동대장님의 정신교육은 이미 귓가에 울려퍼지는 달콤한 자장가가 되었고, 나는 꿈나라로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자 출발합시다~! 전원 기상~!'
얼마나 잤을까? 다들 일어가더니 강당밖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뭐야? 마친건가? 아직 5시간이나 남았는데? 어디로 가는거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물어보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가만히 따라나갔다. 동대장님은 어디선가 공수해온 포터를 타고 가버렸고, 귀여운 상근녀석들이 우리를 인솔하여 걷기 시작했다.
'선배님들, 이동시 차량이 많으니 한줄로 서서 이동해주십시오~!'
내가 대한민국 길을 걸어가는데 통제를 받는다. 문득 군복무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멀게는 조교들의 외침과 가깝게는 후임들을 인솔하던 나의 모습. 그때의 추억을 생각하며 담배를 한대 물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걸까?
'어이 마린~! 우리 어디가냐?'
'지금 저희관할 작계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아~ 작전지역으로 가는거구나? 하긴 명색이 우리 고장을 지키는 향토예비군인데 내가 지켜야할 작계지역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가서 한바퀴 구경하고 마치는가 보네~! 갑자기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20분정도 걸었을까? 어느덧 민가는 사라지고 주위로는 논, 밭들이 펼쳐졌다. 그리고 동대장님의 파란 포터가 보였다.
'오느라 수고가 많았어요~! 이제부터 우리를 할 일은 이 곳에 2인호 4개를 구축할 것입니다. 차량에 있는 장비들을 하나씩 챙기고 다시 분대별로 집합하세요~!'
지금 앞에 계시는 아저씨께서 뭐라고 하신거지? 2인호? 2인호라 하면 사람 2명이 들어갈수 있는 구덩이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 나보고 구덩이를 파라고 하는 건가? 군생활 하면서 판 구덩이가 몇개인데? 그만큼 팠으면 됐지? 예비군한테 또 구덩이를 파라니? 이게 지금 말이 되는거야? 꿈만 같았다. 내가 선배들에게 들은 향방작계는 짱박혀서 막걸리와 안주를 먹으며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시간만 떼우면 된다고 하였는데 말이다.
순식간에 예비군들은 웅성거리며 항의하기 시작하였다. 언제부터 예비군들이 삽들고 구덩이 파냐고~! 이건 너무 잔인한 처사이다~! 예비군도 사람인데 너무 한거 아니냐~! 우린 결사항쟁을 외치며 동대장님을 압박하였다. 이에 동대장님은 하늘을 한번 바라보시더니 큰 결심을 한듯 우리에게 말하였다.
'좋다~! 빨리 만들면, 완성되는 즉시 집으로 보내주겠다~!'
호오... 만드는 즉시 보내준다라? 급 솔깃해졌다. 어차피 만들어야 되는데 이정도면 어느정도 협상 성공이었다. 웅성거리던 예비군들도 잽싸게 포터에서 삽과 곡팽이를 하나씩 챙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빨리 출발하자고 아우성이다. 아나 ㅋㅋㅋ 나도 그렇지만 이 아저씨들도 어지간히 빨리 집에 가고 싶은가보다.
10명씩 한 개조를 만들었고, 동대장님의 지시에 따라 맡은 구역을 배정받았다. 삽과 곡팽이를 들고 서있는 예비군 10명, 땅을 보면서 작전을 구상하였다. 참고로 10명중에 서로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빨리 완성하고 집에 가고자하는 열정 하나로 똘똘 뭉쳤다.
'음 제가 먼저 곡팽이로 땅을 뒤집을게요~!'
'저는 삽질할게요~! 대대 삽질왕 출신이라고요~!'
'하하 저도 삽질 일주일 하고 포상받았다능~!'
'동시에 열명이 다 못들어가니, 나머지는 위장할수있는 풀과 나뭇가지들을 모아옵시다~!'
'이까이거~! 후딱 해치우고 빨리 집에 갑시다~!'
'아자 아자 파이팅~!'
역시 예비역 병장 10명의 힘은 실로 위대하였다. 각자 부대도 다르고 보직도 다르지만, 삽질하나는 기똥차게 하였고, 곡팽이질은 마치 포크레인을 보는 거 같았다. 지칠때쯤되면 잽싸게 일사불란하게 교대하였고, 쉴새없이 작업하였다. 정말 순식간에 호가 구축되기 시작하였다.
병장 한명이 이등병 10명 몫을 해내는데, 예비역 병장 10명이 모여있으니, 전투력은 가히 최고였다! 아저씨들의 곡팽이질은 1센티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위치에 꽂혔다. 그리고 벌떼처럼 달려들어서 삽집을 해대니, 구덩이는 어느덧 무릅까지 파이기 시작하였다. 사실 날씨도 더웠고, 잠을 못자서 그런지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열심히 하는 아저씨들을 보니 나도 덩달아 열심히 하게 되었다.
'힘들어도 참자~!, 이것만 완성하면 집에 갈 수 있다~! X 10名'
멀리서 동대장님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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