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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1997년 여름,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방학을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 여느때처럼 뽀뽀뽀 유치원을 재밌게 보고, 채널을 돌려 TV유치원 하나둘셋~! 율동까지 마치고 나서야 책가방을 메고 등교하였다. 항상 지각의 문턱에서 나는 쾌감을 느꼈다.
오늘도 지각인건가? 교문을 바라보니 등교하는 학생들이 몇명 없었다. 째깍째깍~! 아슬아슬하겠는데, 나는 서둘로 교문을 향해 뛰어갔다. 교문 앞에서는 낯선 사람이 서있었다. 그리고는 나를 보더니 웃으면서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학생, 이거 가지고가~!'
웃으면서 건네주는데 차마 거절할 수도 없고, 그냥 손에 쥐고 교실로 향해 뛰어갔다. 휴우~! 오늘도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책상에 앉아서 받은 전단지 같은 책받침을 확인해보았다.
'여름방학 그냥 허무하게 보낼겁니까? 당신도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이건 뭐지? 음... 합숙학원 광고잖아~! 앜ㅋㅋ 어느 똘아이가 이런 곳을 가는거지? 참 할일도 없군~! 나의 여름방학은 벌써 완벽하게 계획되어 있다구~!
'야 가츠야~! 방학하면 모할꺼냐?'
'나? 지금 컴퓨터에 새로 설치해논 게임만 10개가 넘어~! 3일에 하나씩만 해도 여름방학 끝나겠다~! 방학때 나 찾지마라~! 근데 여름 방학은 너무 짧은 거 같애~! 어흐흑흫ㅜㅜ'
이제 하루만 버티면 방학이다. 벌써부터 너무 기대되는걸~! 수업을 마치고, 관물대에 넣어둔 교과서를 모조리 챙기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가져온 교과서를 책상에 차곡차곡 올려놓았다. 이제 너희들과 한동안 헤어져야 할 시간이야~! 얌전히 있으렴~!
그날저녁, 저녁을 먹고 TV를 보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책상에 수북히 쌓인 교과서를 발견하시고는 이것저것 살펴보셨다. 그러다가 아침에 받은 책받침에 시선이 멈추셨다. 책받침을 이리저리 살펴보시더니 거실에 계신 아버지께 들고 가셨다.
'여보~! 우리 가츠 이번 방학때 여기 보낼까?'
'어디? 뭔데 보자~!'
'애들 합숙하면서 방학내내 공부시키는 학원인데, 요즘 많더라~!'
'오호~! 좋은데~! 방학내내~ 점마 볼 생각하니 걱정부터 앞섰는데~!'
'그럼 콜?'
'코오올~!'
책받침을 집에 왜 가져왔지? 아나 버렸어야지~! 이미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부모님은 벌써 마음을 굳혔고, 학원에 전화를 하셨다.
'네 거기 OO학원이죠? 저희 아들, 방학때 등록할려고요~! 아하~! 그럼 모레 아침에 바로 가면 되나요?'
뭥미~! 내일이 방학인데... 모레 아침에 바로 오라니~! 말도안돼! 나는 정말 서럽게 울면서 잠이 들었다.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 다음날 여름방학식을 마치면서, 가출을 결심하였으나 수중에 돈이 한푼도 없었다. 이대로 집나가면 개고생~!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고는 순순히 집으로 갔다.
저녁에 어머니께서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콧노래를 부르면서 나의 짐을 손수 챙겨주셨다. 그리고 집떠나는 아들을 위해 진수성찬을 차려주셨다. 나에게는 최후의 만찬 같았다.
아침이 밝자, 온가족은 마치 나들이 가는거 마냥, 차를 타고 언양으로 향하였다. 여긴 도대체 어디지? 완전 시골이잖아~! 도심지를 벗어나고 차는 한적한 시골로 접어들었다. 주위에는 온통 논과 밭이었다. 완전 시골로 유배가는 기부이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목적지인 기숙학원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무늬만 번지르하다~! 실상은 지옥일텐데...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북적거렸다. 한결같이 부모님 얼굴은 싱글벙글, 학생들은 울상이었다. 입학수속을 마치고, 가족들과 이별의 시간이다. 아버지는 내게 다가오시더니 무언가를 건네주셨다.
'아들~! 공부 열심히 하고, 이거는 비상금이니깐 급할때 써라~!'
비상금을 건네주시고는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은 유유히 떠나셨다. 아까오는 길에 가족들은 온천을 간다고 하였다. 흑... 나는 이상한데 감금시켜놓고, 놀러가시다니 너무하잖아~! 나도 온천 좋아하는데...
이윽고, 조교가 우리를 강의실로 데려갔다. 강의실 앞쪽에는 CCTV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이거 정말 꼼짝마라~! 잖아. 이제 여기서 자그마치 45일간이나 생활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멍한 우리들 앞에 선생님이 오시더니, 바로 수업을 시작하신다. 아나~! 어제까지 학교에서 수업했는데, 방학한지 하루만에 또 수업이라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야~! 넌 여기 어쩌다가 왔냐?'
'나? 교문 앞에서 책받침 받은거 집에 가지고 갔는데, 엄마가 보시더니 보냈어~!'
아낰ㅋㅋㅋㅋㅋ 나같은 놈이 또 있네~! 다들 그런식으로 왔나보다. 문득 나에게 책받침 건네준 아저씨가 너무 미워진다~! 활짝 웃으면서 건네준 아저씨의 얼굴이 자꾸 오버랩된다. 그렇게 첫날부터 바로 강의는 시작되었고, 나는 여전히 패닉상태에 빠져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시간표이지 않은가? 그렇게 시간은 하루 하루 흘러갔다. 문득 창문밖 풍경을 바라보니 너무 평화로웠다. 지금 친구들은 머하고 있을까? 다들 신나게 놀고 있겠지? 바닷가에 갔을려나? 엄마, 아빠는 잘지내고 계시는 건가? 흑.... 집이 너무 가고싶다~!
사실 기숙학원의 특성상, 일절 전화통화는 금지되었고 당시엔 휴대폰도 보급화 되지 않은 시점이라 바깥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었다. 그러나 2주에 한번씩 면회가 허용되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한번 가족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주로 가족들이 맛있는 음식를 사들고 와서 시간을 보낸다. 마치 군대에서의 면회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면회가 가능한 토요일이 되었다. 우리 부모님은 일요일날 오시기로 되어있었다. 워낙 시골 구석에 위치한 학원이라 평소에는 학원앞에 좀처럼 차가 지나다니지 않았는데, 오늘은 면회객들로 인해 차가 많이 들락날락 거렸다. 종종 택시도 올라오고 있었다.
순간 나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 지금 면회객으로인해 학원이 어수선하다. 잘만하면 조교들의 눈을 피해 탈출할 수 있겠는데~! 여기서 더이상 머물 수 없어~! 여름방학이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잖아~! 그래 결심했어~! 이곳을 탈출하는거야~! 나는 탈출을 결심했고, 주머니에 넣어둔 비상금을 꼬옥 쥐었다.
일단 정문을 벗어나야되는데, 그곳에 조교가 지키고 있다. 평소같으면 정문 근처에만 가도 돌아가라고 하지만, 오늘은 상황이 다르다. 면회객들이 계속 출입하기때문에 그틈에 어울려서 나가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보였다. 당당하게~! 떨지말고~! 파이팅~!
나는 한무리의 일행들과 자연스레 걷는 속도를 맞추면서 정문으로 나갔다. 조교는 나를 한번 보더니 관심없다면서 이내 고개를 돌렸다. 좋아~! 정문을 벗어나자마자 주위를 둘러보니 때마침 정차해있는 택시가 한대 있었다. 나는 택시를 향해 달려갔다~!
택시기사아저씨는 학원 츄리닝과 슬리퍼 신은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시더니 출발하였다. 사실 학원에서 우리집까지는 1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학생~! 집에 급한 일이 있나보네?'
'네~! 엄청 중요한 일이거든요~!'
그렇게 집앞에 도착하니, 막상 올라갈 엄두가 안났다. 분명히 맞아죽을텐데~! 그러나 이차림으로 어디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에라이 모르겠다~! 그냥 우는거야~! 모성애를 자극하자~! 분명히 엄마도 내가 보고싶었을거야~! 용기를 내어 집으로 들어갔다.
철컥~!
'어~! 너 머야~! 왜 왔어~!'
'엄마~! 엉엉 ㅜㅜ 너무 보고싶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잖아~! 와락~!'
그날 정말 디지게 맞고, 다시 원위치 되었다. 그리고 학원에서는 나를 빠삐용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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