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보기
오늘은 막내인 시절 준비태세에 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5년 4월, 이등병 가츠군은 첫 훈련인 유격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어느정도 군생활에 자신감이 붙은 시절이다. 유격훈련을 복귀한 지 일주일밖에 안되었는데, 또 군지검이라는 훈련이 잡혀있었다.
지난 주에 뛰었던 유격훈련은 예비군들에게 치가 떨리는 훈련이지만, 비전술훈련이다. 쉽게 말해서 전술적인 내용보다는 말그대로 병사의 자신감, 체력증진을 목표로 하는 훈련이다. 하지만 군전투지휘검열은 부대의 전술,전투,지휘체제등을 검열하는 훈련이다.
고로 전술훈련은 시작은 언제나 준비태세와 함께 시작한다. 준비태세라 흔히들 뉴스에서 북한이 도발할때마다 전군은 데프콘 3을 발령했다는 식으로 많이들 보도한다.
데프콘 4 : Double Take (더블 테이크) 양 진형이 서로 자리를 잡는다는 뜻으로 대립은 하고 있으나
군사개입 가능성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한국에는 1953년 정전 이래 데프콘 4가 상시적으로 발령되어 있다.
데프콘 3 : Round House (라운드하우스) 말 그대로 집 주위를 둘러쌌다는 뜻으로 중대하고 불리한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긴장상태가 전개되거나 군사개입 가능성이 있을 때
한국군이 가지고 있는 작전권이 한미연합사령부로 넘어가고,
전후방 부대의 움직이 달라지며, 전군의 휴가·외출이 금지된다
데프콘 2 : Fast Face (화스트 페이스) 적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는 뜻으로
적이 공격 준비태세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때 발령하며
전군에 탄약이 지급되고, 부대 편제 인원이 100% 충원된다
데프콘 1 : Cocked Pistol (카크트 피스톨) 노리쇠를 뒤로 젖혔다는 뜻으로 말하자면 방아쇠만 당기면 전쟁이
시작되는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중요 전략이나 전술적 적대행위
가 있고, 또 전쟁이 임박해 전쟁계획 시행을 위한 준비가 요구되는
최고준비태세 때 발령된다. 동원령이 선포되고, 전시체제로 돌입된다.
위와 같이 한국군은 여전히 휴전중이므로 평시에는 데프콘 4를 유지하고있다. 주로 훈련때는 데프콘 2 상황이 가상으로 발령된다. 가츠부대에서 데프콘 2가 발령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자.
데프콘 2가 발령되면 부대원들은 전원 총기를 휴대하고 완전군장으로 주둔지를 철수하여 신속히 부대 작계지역으로 이동하여 방어준비를 한다. 사실, 말이 이동이지 주둔지에서 40km 떨어진 경기도 가평 야산에 방어진지가 있다. 그래서 부대에서는 일년에 2차례 2주간의 기간으로 작계지역에서 텐트치고 생활하면서 진지공사를 한다. 산에 호를 파고, 교통호를 보수하고 다듬는 일명 생노가다이다. 야생의 산 속이다보니 나무가 자라고, 등산객, 산짐승이 훼손하고, 천재지변으로 무너지고, 가관이다 ㅜㅜ
주둔지는 언제 북한군에게 넘어갈지 모르니, 주둔지내에는 북한군이 재사용 할 수 없게끔 모든 군용품, 식량, 개인신상정보등을 파기하거나 옮긴다. 아니 실제 상황에서는 주둔지를 폭파시키고 철수한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훈련 상황이지 않는가? 사실 폭파시키면, 아니 실제상황이면 그거 언제 다 챙겨서 떠나겠는가? 대충 하고 불지르고 폭파시키고 가면되는데. 훈련 상황에서는 다시 사용해야되니깐 또한, 통제관이 사진도 찍고, 꼬투리잡아서 상부에 보고를 하니 미치는 것이다.
훈련은 대개 기상과 동시에 상황전파를 시작으로 시작된다. 내무실에서 매트리스깔고 침낭덮고, 속옷만 입고 편안하게 자고있는데 상황이 발령된다.
삐이 삐이~
제 1부 화스트 페이스 화스트페이스!
제 2부 2005년 4월 19일 06시부
제 3부 발령권자 대대장
제 4부 안면위장실시, 소산진지투입, 증가초소운용, 치장물자 직접분배, 탄약,식량 카드로 대체
이런 달콤한 멘트와 함께 시작된다. 그러면 총알같이 일어나서 침낭을 말고, 군복을 입고, 전투화를 신은 다음, 단독군장을 착용하고, 총기함으로 가서 총기를 파지한다. 그리고 군장에다가 군장품목을 다 때려박고 완전군장을 결속한다. 이때 개인 관물대에는 먼지 한톨 있어서는 안된다 쏵다 비워야된다.
물론 내무실 벽에 걸린 사진,관등성명, 분대편성표등 모든 것 다 회수하여 파기하고 작계지역으로 이동하기전까지 각 분대별 주둔지 소산진지로 투입되어 방어 준비를 한다. 이때 4부에 명시된 안면위장을 실시하고 각분대별로 1분대는 치장물자, 2분대는 식량, 3분대는 탄을 받아서 소대원들에게 분배해줘야 한다.
쉽게 이야기해서 포장이사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물론 태어나서 가장 빠른 스피드로....
하지만 우리의 어리버리한 이등병님들, 전투화 신는데만 1분, 군장에 야삽,수통다는데만 1분이 소요되는 현실에서 완전군장을 메고 소산진지로 투입하는데 필요한 5분안에 하기란 정말 죽었다 깨어나도 못한다.
고로 그들에게 필요한건 무한 반복숙달연습 뿐이다.
이점은 가츠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시간 유격훈련은 말그대로 비전술훈련이었기 때문에 훈련전날 오후내내 느긋하게 준비하면서 군장을 결속하였다. 또한 이등병들의 보급품은 삐까뻔쩍한 새 것이 아니다. 지난 수십년동안 물려져 내려온 개폐급 물건들이다. 야삽고리가 휘어져 있어서 군장에 고리결속하는데만 2-3분 걸리면 말 다한거 아닌가?
그러나 고참들은 5분을 원한다. 5분안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다같이 사이좋게 손잡고 소산진지로 투입되기를 원한다 말이다. 훈련뛰기전에 우리 분대 김일병이 나에게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준비태세의 개념과 니가 해야될 일을 설명해주었다.
처음듣는순간 5분이라고 하길래 거짓말인줄 알았다.
'야 나 이등병때는 5분이 머야! 4분안에 못하면 소산진지투입해서 거기서 훈련상황종료할때까지 고참한테 개갈굼먹고, 두들겨 맞았어 임마! 정말 그때만 생각하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는게 신기하다 신기해! 어흑흑흑 애색히 X나 편할때 군대와가지고 형 마음을 알려나 모르겠다! 빵실한넘! 흑ㅎ그그흑ㅎ'
사실 그렇다, 군대가 아무리 편하고 친절해졌다고 하지만, 준비태세는 말그대로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훈련상황이다. 고로 준비태세상황일때는 내무실은 뭐랄까? 한편의 아비규환이다.
실제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자신의 전우가 늦게 준비한다고 버리고 가면 되겠는가? 놔두면 죽을텐데. 어떻게든지 데리고 가야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완벽한게 평소에 훈련시켜 놓아야된다. 또한, 이것은 내무부조리가 아니고 군인으로서 해야할 임무이기 때문에 아주 타이트하게 교육받는다. 사실 훈련을 가장한 합법적인 내무부조리로도 요긴하게 쓰인다.
우리의 김일병! 나를 생각해주는 고마운(?) 마음에 분대장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보고한다.
'분대장님~ 가츠이병은 아직 준비태세 한번도 안해봤는데, 당장 모레 훈련인데 지금 준비태세 연습해야 되지 않습니까?'
'아 맞네! 저 놈 저번에 유격때보니깐 군장결속하는데 30분 넘게 걸리드만, 흠 이따 저녁에 연습한다고 하고, 이론교육 확실히 시켜놔라!'
'네~ 알겠습니다! 히히히 아 재밌겠다! 가츠 오늘 한 2킬로 빠지겠네~ 아아아흐흐흐 신난다~!'
'야야! 김일병! 근데 요즘 준비태세도 내무부조리라고 말 많던데~ 음 이등병만 시키면 보기 안좋으니깐 니도 같이 해라! ㅋㅋㅋ'
'헉... 박병장님! 아흐긓긓그. 왜그러세요 나만 미워해...... 아아아아!!'
그렇게 그날저녁 우리 준비태세 연습을 하기로 했다. 당시 1분대에는 가츠가 막내였고 이등병만 3명 있었다. 그리고 김일병까지 4명이서 준비태세연습을 한다. 이미 이론 설명을 지겹도록 나는 이미지맵을 그리며 준비하고있었다.
준비태세할때 통제관들이 실감나는 사진을 왕창찍는데, 정작 나에게는 한 장도 없어서 참고용으로 하나 올렸다. 이미 박상병, 심이병, 김이병은 예전 이야기에서 종종 등장하였다. 여기서 인물들을 구경하지말고 관물대랑 벽에 부착된 것들을 보기로 한다. 상황이 걸리면 지금 사진에서 보이는 매트리스, 활동화정도의 불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모조리 사라진다. 단 5분만에!
내무실에서 하는 준비태세가 뭐가 힘들냐고 반문하겠지만, 관물대쪽을 보면 평소에 저렇게 차곡차곡 각 잡아서 정리해놓는데 그걸 군장에 다 때려박고 다시 풀어서 정리해봐라, 그것도 널널하게 편한 마음으로 하는게, 고참들 눈치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빠른 빛의 속도로 말이다. 장담컨대 딱 2번만 하면 그 아무리 추운겨울이라도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렇게 저녁식사후 분대장은 사진에서 처럼 누워서 TV를 보면서 우리에게 상황을 걸었다.
삐이삐이~
제 1부 화스트페이스
제 2부 2005년 4월 17일 19시부
제 3부 발령권자 분대장
제 4부 단독군장 착용, 군장결속
그렇게 4명은 미친듯이 전투복으로 환복하고 단독군장을 착용하고, 군장을 결속하였다. 가츠가 군장에 야삽과 수통을 달 무렵. 김일병은 벌써 완료하였다. 이윽고 5분 초과. 털썩... OTL
'야 가츠 이색히 겁나 쳐느리네! 다시 원상복귀!'
원상복귀! 시작! 원상복귀! 시작! 원상복귀! 시작! 원상복귀! 시작! 원상복귀! 시작! 원상복귀! 시작!
평화로운 주말 저녁 내무실의 한쪽에서는 예능프로 보느라 낄낄거리고 있을때, 가츠이병은 혼자 땀을 벌벌흘리며 비오는날 먼지 날리듯이 울면서 군장을 결속하였다.
그로부터 1년 6개월후
가츠는 내무실에 누워서 발가락으로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악랄하게 웃으며 외친다!
'야~ 2분대! 상황발생! 오늘은 특별하게 카크트 피스톨이다! 니들의 스피드를 보여줘! 캬캬캬캬!!!!'
'가츠의 군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츠의 군대이야기, 어깨탈골 下편 (81) | 2009.05.03 |
---|---|
가츠의 군대이야기, 어깨탈골 上편 (101) | 2009.05.02 |
가츠의 군대이야기, 유격훈련 下편 (135) | 2009.04.29 |
가츠의 군대이야기, 유격훈련 上편 (138) | 2009.04.28 |
가츠의 군대이야기, 동원훈련 (203) | 2009.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