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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2월 26일 추운 겨울날, 갓 고등학교 졸업한 어린 나는 중국 하얼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지난 20여년동안 항상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자란 가츠는 그렇게 부모님 곁을 떠났습니다.
당시, 중국어라고는 '니하오'와 '쎄쎄' 딱 두마디 할 줄 아는 가츠는 두려움 반, 설레임 반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다녀야할 대학교는 단지 몇 장의 팜플렛으로 본게 전부였습니다. 낯선 나라,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로 가득 찬 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출국하기 하루 전 날, 아버지께서 목욕탕을 같이 가자고 하시더군요.
'아들, 목욕이나 하러가자~! 너 임마 평소에도 씻는거 무쟈게 싫어하잖아! 중국 딱이다! 딱!'
'아 ㅋㅋㅋㅋ'
그렇게 부자간의 목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가 정성껏 준비하신 최고로 맛나는 밥도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한동안 못 볼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방에서 싸놓은 짐들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저를 부르시더군요.
'아들! 아빠가 작년에 사놓은건데 너가 가져가라! 혹시 모르니 비상시를 대비해서 잘 지니고 다녀~'
손에 쥐어주시는 건 보기에도 묵직해보이는 금목걸이였습니다. 그제서야 제가 떠나는게 실감이 나더군요. 평생을 매일같이 봐오던 사람들을 이제는 못보는구나.
학창시절, 가츠는 제발 부모님께서 부부동반으로 멀리 오랫동안 여행 좀 가셨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그럼 집에서 편안히 게임도 하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시켜먹고, 친구들 불러서 신나게 놀고, 완전 가츠 세상이니깐 말이예요.
그렇게 머나먼 타국에서 가츠는 캠퍼스생활을 하였습니다. 사실 적응력 빠른 가츠군은 금방 중국 생활에 적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친해졌고, 여자친구도 생겼습니다. 그러다보니 집에 전화는 한 달에 한 번 할까말까였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도 그리 크지않더군요.
금목걸이가 사진에서처럼 호랑이보다 더 큰! 자그마치 20돈짜리입니다. 목에 걸고 있으면 너무 길어서 불편하기도 하고, 맵시도 살지 않더군요. 또한 술자리때마다 농담삼아
'이거 왜이래! 이거 금목걸이야! 돈없으면 이거 팔면되지! 어여 마셔! 마셔! '
또한, 면세점이나 길거리를 지나치다 갖고 싶은 물건을 볼때마다
'이거 그냥 확 팔고 사버릴까? 아 갖고싶다. 저건 내 것이어야되는데.'
그렇게 금목걸이의 의미는 변질되었답니다. 3년이 흐르고 가츠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군입대를 하였습니다. 군대에서는 금목걸이 대신 군번줄을 착용하여야 하므로 금목걸이는 가지고 갈 수 없었습니다. 아니군요 가끔 주임원사님들은 금목걸이로 된 군번줄을 착용하고 있던군요. 간지 좔좔~~
금목걸이 아무데나 방치해놓으면 어머니가 다시 가져갈까봐 고이고이 숨겨놓고 입대해주는 영악함을 발휘하였습니다. 2년의 국방부 시계가 흐르고 다시 세상으로 나온 가츠군!
나오자마자 군대에서 절제되었던 소비욕구가 꿈틀꿈틀 살아나더군요. 특히 2년동안 군용 전자시계만 차온 가츠로서는 예전부터 봐둔 시계가 너무너무 갖고 싶었습니다.
TISSOT Le Locle Chrono, 저 빛나는 시계가 너무너무 갖고 싶었습니다. 그러던차에 숨겨둔 금목걸이가 생각이 났고, 목걸이를 팔아서 사면 되겠구나! 거의 실행 착수직전 상황까지 갔습니다. 헌데, 의외의 곳에서 돈이 생겼고, 금목걸이를 팔지 않고서도 시계를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여담으로 지금 가츠의 블로그 주소가 Le Locle이랍니다. 당시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를 보여주는 듯 하네요.
시간이 흘러흘러 2009년 3월, 뉴스에서는 금값! 사상최대 폭등!, 20만원 돌파! 지인들은 모였다 하면 금값이야기를 하고, 지금 팔아야할 최고의 적기다! 하더군요. 하긴 산술적으로만 봐도 구입할 당시 한 돈에 5만원하던 시세가 지난 달에는 20만원을 돌파하였으니, 수익률 400%였습니다.
작년 초에 가입한 펀드가 -77%의 수익률을 내고 있으니, 금목걸이라도 팔아서 상처 받은 마음을 치유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그렇게 금목걸이를 들고 지인과 함께 금은방을 방문하였습니다. 친절한 금은방 아주머니는 금목걸이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무게를 재시더니
'이거 400만원 조금 안되게 나올듯하네요. 정확하게 잴려면 끊어서 재봐야겠는데, 정말 파실꺼예요?'
라며 아주머니는 손에 목걸이를 들고 제 눈앞에서 흔들시더군요. 순간, 그 날이 생각나더군요.
7년전 철부지 같은 어린 아들이 외국으로 떠난다고 걱정하시면서 제 손에 꼭 쥐어준 어머니의 모습
'아니예요, 다시 주세요. 그냥 가지고 있을래요!'
왜 안파냐고! 팔아서 맛있는거 사주기로 했잖아! 투덜거리는 지인을 뒤로하고 가츠는 가게 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 문자 한 통을 넣었습니다.
'저녁에 엄마 좋아하는 칼국수 먹으러가자! 내가 한턱 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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